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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바 야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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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난바 야스코는 일본의 여성 등산가로, 1949년 도쿄에서 태어나 1996년 에베레스트 등반 중 사망했다. 와세다 대학교 졸업 후 인도 연합 통신과 플라잉 타이거 라인에서 근무하며 등산을 병행했다. 1980년 몽블랑을 시작으로 7대륙 최고봉을 완등했으며, 1996년 47세의 나이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으나 하산 중 조난당했다. 1996년 에베레스트 참사 당시, 제한 시간을 지키지 않아 조난당했으며, 시신은 1997년에 수습되어 화장되었다. 그녀는 스폰서 없이 자신의 수입으로 등반 비용을 충당하며 새로운 유형의 등산가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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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바 야스코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난바 야스코
출생명다나카 야스코
출생일1949년 2월 7일
출생지도쿄도 오타구
사망일1996년 5월 11일 (47세)
사망 장소네팔 에베레스트산
사망 원인저체온증
안장 장소일본
학력와세다 대학 문학부
알려진 업적1996년까지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한 최고령 여성
에베레스트산 등반 최고령 여성
1996년 에베레스트산 재난
배우자난바 겐이치
인물 정보 (일본어)
이름 (한자)難波 康子
이름 (가나)なんば やすこ
로마자 표기Nanba Yasuko
구 성다나카 야스코 (旧姓)
출생지 (상세)도쿄도오타구오모리
사망 장소네팔 에베레스트 사우스콜
학력와세다 대학문학부 영문학 전공
배우자難波賢一
알려진 업적7대륙 최고봉 등정 (1996년)
일본: 2번째/여성 2번째
세계: 44번째/여성 7번째
에베레스트 등정 (1996년)
일본: 40번째/여성 2번째
세계: 626번째/여성 36번째
※1996년 당시 여성 최고령 기록

2. 생애 및 경력

난바 야스코는 에베레스트 참사 이전 도쿄에서 페덱스(Federal Express)의 인사 관리자로 근무했다.[4] 1974년 플라잉 타이거 라인에 입사하기 전에는 인도 연합 통신에서 근무했다.[12][13]

1987년 "에베레스트 클럽"에서 만난 난바 겐이치와 결혼했다. 남편 난바 겐이치[5]와 오빠가 있었으며, 이들은 나중에 그녀의 시신을 에베레스트에서 수습하기 위해 네팔로 갔다.[6]

1996년 5월 10일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여, 47세의 나이로 7대륙 최고봉을 완등했다. 이는 당시 에베레스트 여성 등반자 최고령 기록이었으며(2000년에 폴란드 출신의 안나 체르빈스카가 50세로 등정하면서 기록이 갱신되었다), 일본인 여성으로는 두 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이었다. 그러나 에베레스트 등반 후 하산 중 심한 눈보라를 만나, 다음 날 5월 11일 최종 캠프에서 불과 300m 떨어진 지점에서 사망한 것이 확인되었다. 1999년 6월, 뉴질랜드 팀의 협력으로 시신이 수습되었다.[12]

1996년, 뉴질랜드의 어드벤처 컨설턴츠사의 에베레스트 상업 원정대에 65000USD를 지불하고 참가했다. 5월 10일, 어드벤처 컨설턴츠대는 미국의 마운틴 매드니스사의 상업 원정대와 동시에 에베레스트 정상을 목표로 했고, 난바는 등정에 성공했다. 이로써 일본인 여성으로는 두 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자, 일본인으로는 두 번째 7대륙 최고봉 등정자가 되었다. 그러나 인솔자가 사전에 지시했던 등정 제한 시간을 지키지 않아, 다수의 참가자가 하산 도중에 일몰을 맞이하고 눈보라에 휘말려 조난당했다.

난바 일행 11명은 최종 캠프 지점까지 300m 지점에 도달했지만 맹렬한 눈보라로 인해 발이 묶였다. 10명은 생환했지만, 난바는 다음 날 5월 11일 아침에는 생존해 있었지만 그 후에 동사했다. 이 때 어드벤처 컨설턴츠대, 마운틴 매드니스대 대장도 각각 다른 장소에서 조난사했다.

난바의 유해는 다음 해에 셰르파 등에 의해 수습되어, 유족의 입회하에 베이스캠프에서 화장되었다. 향년 47세.

1998년 일본인 여성 세 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자가 된 속소미요는, 난바와 같은 시기에 IMAX 영화 출연을 위해 정상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며, 7000m 지점에서 난바와 스쳐 지나가 대화도 나누었다. 속소는 에베레스트 대량 조난 사고 직후 생존자 구조 및 간호에도 관여했다. 날씨가 회복된 후, 속소는 정상을 목표로 했지만 갈비뼈 골절로 인해 8000m 지점에서 등정을 단념했다.[14]

5월 16일 생존자들이 하산하여 산기슭의 샹보체 마을에 도착했을 때, 남편인 난바 겐이치와 남동생, 그리고 2명을 인솔한 누키타 무네오 3명도 도착해 있었다. 누키타 무네오는 존 크라카우어의 저서에서 사의 표명 목록의 한 명으로 언급되어 있다. 카트만두에 대거 운집해 있던 보도진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온 기자들이었으며, 이 대량 조난 사고는 일본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어졌다.

2. 1. 초기 생애

1949년 2월 7일, 도쿄도 오타구 오모리에서 태어났다. 1967년 후렌도 학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에 입학했다. 와세다 대학교 재학 중 "와세다 대학교 노보의 회"라는 등산 동아리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일부 출처에는 "방랑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었다고도 한다.[12]

2. 2. 등반 경력

난바 야스코는 회사원으로 근무하면서 해외 국제 공모대에 참가하여 등반을 했다.[12] 1980년 가토 야스오의 가이드로 몽블랑 등반을 시작으로, 1982년 킬리만자로, 1984년 아콩카과, 1985년 매킨리(현 데날리)를 등반했다. 결혼 후에도 1992년 엘브루스, 1993년 빈슨 산괴, 1994년 칼스텐츠 등을 등반하여[12] 7대륙 최고봉을 정복했다.

7대륙 최고봉 등정 기록은 다음과 같다.

연도산 이름높이비고
1980년몽블랑4810m가토 야스오 가이드
1982년 1월 1일킬리만자로5895m
1984년 1월 1일아콩카과6960m
1985년 7월 1일매킨리6168m
1992년 8월 1일엘브루스5642m
1993년 12월 29일빈슨 산괴4892m
1994년 11월 12일칼스텐츠 피라미드4884m
1996년 5월 10일에베레스트8848m


2. 3. 직장 경력

난바 야스코는 도쿄에서 페덱스(Federal Express)의 인사 관리자로 근무했다.[4] 1974년 플라잉 타이거 라인에 입사하기 전에는 인도 연합 통신에서 근무했다.[12][13]

3. 1996년 에베레스트 등반과 조난

난바 야스코는 1996년 5월 10일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여 당시 여성 최고령 등정 기록을 세웠으나, 하산 도중 1996년 에베레스트 참사에 휘말려 5월 11일 사망했다.[4] 그녀는 페덱스(Federal Express)의 인사 관리자로 근무했으며, 남편 난바 겐이치와 오빠가 유족으로 있었다.[5][6]

1996년 5월 야스코 난바


난바는 뉴질랜드의 어드벤처 컨설턴트사의 에베레스트 상업 원정대에 65000USD를 지불하고 참가했다. 그녀는 마운틴 매드니스사의 상업 원정대와 동시에 에베레스트 정상을 등정했다. 등정에는 성공했지만, 하산 도중에 눈보라를 만나 조난당했다. 당시 그녀는 산소 공급이 다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산소 마스크를 착용하려 했다고 한다.

3. 1. 조난 당시 상황

1996년 5월 10일, 난바 야스코는 에베레스트 산 등정에 성공했지만, 하산 도중 조난을 당했다. 등정 당시, 인솔자가 사전에 지시했던 등정 제한 시간을 지키지 않아 많은 참가자들이 해가 진 후 눈보라를 만나게 되었다.[14]

난바 야스코 일행 11명은 최종 캠프에서 300m 떨어진 지점까지는 도달했지만, 맹렬한 눈보라 때문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발이 묶였다.[14] 이들 중 10명은 어떻게든 살아 돌아왔지만, 난바 야스코는 다음 날인 5월 11일 아침까지는 살아있었으나 결국 동사하고 말았다.[14] 당시 어드벤처 컨설턴츠 팀과 마운틴 매드니스 팀의 대장들도 각각 다른 곳에서 조난을 당해 사망했다.[14]

당시 상황에 대해 존 타스크는 "그녀는 작은 여성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굳은 결의를 가진 여성을 본 적이 없습니다. 몸무게는 약 45kg 정도였지만, 결의에 관한 한, 그녀는 그 두 배의 결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에 따라, 저체온증체질량의 문제로, 그녀는 체중이 두 배인 평균적인 사람보다 훨씬 더 빨리 극도로 추워졌을 것입니다."라고 묘사하며, 그녀의 죽음에 영향을 미쳤을 요소들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8]

함께 조난당했던 벡 웨더스는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지만, 난바 야스코는 탈진과 추위로 인해 결국 사망했다.[7] 존 크라카우어의 책 ''희박한 공기 속으로''에는 난바 야스코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닐 바이드먼의 심정이 묘사되어 있다.[7]

3. 2. 구조 및 수색

1996년 에베레스트 참사 당시 아나톨리 부크레예프는 갇힌 등반가들을 찾기 위해 캠프 IV에서 밤에 나섰다. 다른 사람들을 돕고 나서, 그는 마지막으로 샌디 피트먼과 팀 매드슨을 위해 돌아왔으나, 난바 야스코가 이미 사망했다고 판단하고 벡 웨더스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매드슨은 둘을 혼자 남겨두었다.[7] 다음 날, 어드벤처 컨설턴트의 고객 중 한 명인 스튜어트 허친슨은 난바와 웨더스를 찾기 위해 수색대를 조직했다. 허친슨은 둘 다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베이스 캠프까지 내려갈 만큼 오래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하여, 다른 등반가들을 위해 제한된 자원을 아끼기 위해 둘을 혼자 남겨두기로 결정했다.[7]

웨더스는 모든 예상을 깨고 살아남아 캠프로 돌아갔지만, 난바는 탈진과 기상 노출로 사망했다. 존 크라카우어의 책 ''희박한 공기 속으로''는 난바를 구하기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죄책감을 느낀 닐 바이드먼의 고뇌를 묘사하고 있다. 부크레예프의 책 ''더 클라임''은 그녀의 외로운 죽음에 깊은 후회를 표하며, 그녀는 단지 40kg 정도의 작은 여자였고, 누군가가 그녀를 캠프로 끌고 가서 적어도 동료들 사이에서 죽게 해야 했다고 말했다.[7]

3. 3. 시신 수습

1996년 5월 11일, 난바 야스코는 에베레스트 등정 후 하산하던 중 눈보라를 만나 사우스 콜 부근에서 조난당했다. 5월 11일 아침까지 생존해 있었으나, 결국 저체온증과 탈진으로 사망했다.[7]

다음 날, 동료였던 스튜어트 허친슨이 수색대를 조직했으나, 난바와 벡 웨더스는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되어 구조되지 못했다. 그러나 웨더스는 기적적으로 생환했고, 난바는 그 자리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7]

이후 아나톨리 부크레예프는 1997년 4월 28일 난바의 시신을 발견하고 돌무더기로 덮어 보호했다.[7] 1997년 후반, 난바의 남편은 그녀의 시신을 산에서 내려오도록 하는 작전을 후원했다.[7] 그녀의 유해는 셰르파에 의해 수습되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화장되었다.[14]

난바의 죽음에 대해, 다베이 준코는 "마치 여동생을 잃은 것 같아 매우 유감스럽다"라고 표현했다.[9]

4. 사회적 영향 및 유산

난바 야스코의 죽음은 등산계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1996년 에베레스트 산 참사 당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후 하산 도중 조난당해 사망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한 최초의 여성인 다베이 준코는 "마치 여동생을 잃은 것 같고 매우 유감스럽다"라며 애도를 표했다.[9] 데이비드 브레셔스의 영화 ''에베레스트 위의 폭풍''에서는 난바를 "굳은 결의를 가진 여성"으로 묘사하며, 그녀의 작은 체구가 저체온증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8]

1996년 참사 이후 셰르파족은 고락 셰프 근처에 롭 홀, 더그 한센, 앤디 해리스, 난바 야스코를 위한 초르텐을 지어 추모했다. 이 초르텐들은 타르초로 연결되어 있다.[1]

4. 1. 언론 보도 및 반응

1996년 에베레스트 산 참사 당시 난바 야스코의 죽음은 일본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특히 난바가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후 하산 도중 조난당해 사망했기 때문에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14]

뉴질랜드의 어드벤처 컨설턴츠사의 에베레스트 상업 원정대에 65000USD를 지불하고 참가한 난바는 1996년 5월 10일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여 일본인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에베레스트 등정자가 되었다. 그러나 하산 도중 눈보라를 만나 조난당했고, 다음 날인 5월 11일 아침까지 생존했으나 결국 동사했다.[14]

생존자들이 하산했을 때, 카트만두에는 일본 언론 기자들이 대거 몰려 있었고, 이 사건은 일본 언론에서 크게 다루어졌다.[14]

난바의 죽음에 대해,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한 최초의 여성인 다베이 준코는 "그녀가 해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지만, 마치 여동생을 잃은 것 같고 매우 유감스럽습니다."라고 말했다.[9]

데이비드 브레셔스의 영화 ''에베레스트 위의 폭풍''에서는 난바에 대해 "그녀는 작은 여성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굳은 결의를 가진 여성을 본 적이 없습니다. 몸무게는 약 45kg, 그 이상은 아니었지만, 결의에 관한 한, 그녀는 그 두 배의 결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라고 묘사하며, 그녀의 작은 체구가 저체온증으로 이어져 죽음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했다.[8]

4. 2. 추모 및 기념

1996년 참사 이후 셰르파족은 고락 셰프 근처에 롭 홀을 위한 초르텐과 더그 한센, 앤디 해리스, 난바 야스코를 위한 초르텐을 지었다. 이 두 초르텐은 타르초(티베트 불교에서 사용되는 깃발)로 연결되어 있다.[1]

4. 3. 대중문화에서의 묘사

난바 야스코는 여러 대중 매체에서 다뤄졌다.

  • 1997년 TV 영화 ''인투 씬 에어: 데스 온 에베레스트(Into Thin Air: Death on Everest)''에서 오타니 아케미가 난바를 연기했다.[10] 같은 해 로버트 마코위츠(Robert Markowitz) 감독의 영화 ''에베레스트 - 죽음의 그림자(Into Thin Air: Death on Everest)''에서도 오타니 아케미가 난바 야스코 역을 맡아 일본의 비즈니스 우먼으로 묘사했다.
  • 2015년 영화 ''에베레스트''에서는 모리 나오코가 난바 역을 맡았다.[11] 발타자르 코르마쿠르 감독, 제이슨 클라크, 조쉬 브롤린, 제이크 질렌할, 키이라 나이틀리 등이 출연했으며, 일본어 더빙판에서도 모리 나오코가 직접 연기했다.[15]

5. 평가 및 비판

난바 야스코는 스폰서 없이 자신의 수입과 휴가만으로 7대륙 최고봉 등정을 완수했다는 점에서, 당시 주류 등반가들과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등반가였다. 많은 등반가들이 스폰서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미디어 노출을 통해 더 많은 스폰서를 확보하는 방식을 따랐지만, 난바는 이러한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등반을 진행했다.[7] 이는 19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상업 등반대의 영향으로 등반 비용과 절차의 장벽이 낮아진 배경도 있었다. 그러나, 스폰서가 없었던 난바는 미디어 노출이 적어 다른 등반가들에 비해 무명이었다.

1996년 에베레스트 등반 당시 난바는 47세의 나이로 여성 최고령 에베레스트 등정 기록을 세웠지만, 하산 도중 눈보라를 만나 사우스 콜에 갇히게 되었다. 탈진과 저체온증으로 인해 결국 사망하였는데, 당시 상황과 관련하여 여러 논란과 비판이 제기되었다.[7]

존 크라카우어는 저서 ''희박한 공기 속으로''에서 동료 가이드 닐 바이드먼이 난바를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다고 묘사했다. 아나톨리 부크레예프는 ''더 클라임''에서 난바의 죽음에 대해 깊은 후회를 표하며, 그녀의 작은 체구를 고려했을 때 누군가가 그녀를 캠프로 옮겼어야 했다고 주장했다.[7]

데이비드 브레셔스의 영화 ''에베레스트 위의 폭풍'' 인터뷰에서 존 타스크는 난바의 강한 의지를 언급하면서도, 그녀의 작은 체구가 저체온증에 취약하게 만들어 죽음에 이르게 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8]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여성인 다베이 준코는 난바의 죽음에 대해 "마치 여동생을 잃은 것 같고 매우 유감스럽다"고 표현했다.[9]

일각에서는 난바가 충분한 등반 경험 없이 상업 등반대에 참여하여 위험성을 간과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훈련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주말이나 당일치기로 고산 등반을 하는 등 무리한 일정을 소화했다는 점도 지적된다.

6. 기타

난바 야스코는 스폰서 지원 없이 자신의 수입과 휴가만으로 7대륙 최고봉 등정을 완수해 당시로서는 새로운 유형의 등산가로 평가받았다. 그녀는 장기 휴가를 얻기 전에는 동료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주말에도 일했고, 훈련을 위해 고층 빌딩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탄자와의 오야마를 달리는 등 꾸준히 노력했다.

6. 1. 에피소드

많은 저명한 등산가들은 스폰서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고, 등정 후에는 미디어 노출을 늘려 더 많은 스폰서를 확보하여 다음 도전을 이어갔다. 이에 반해 난바 야스코는 모든 비용을 자신의 수입으로 충당했다. 이는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상업 등반대라는 형식으로 인해 비용 및 절차 면에서의 장벽이 대폭 낮아졌다는 배경도 있다. 스폰서를 전혀 붙이지 않은 난바 야스코는 미디어 노출이 없어 다른 등산가들과 비교하면 전혀 무명이었다.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커리어를 중단하지 않고 자신의 수입과 휴가만으로 7대륙 최고봉 등정을 완수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유형의 등산가였다.

원정에서 장기 휴가를 얻기 전에는 동료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주말에도 일했다. 훈련을 위해 일을 쉴 수는 없었기 때문에 고층 빌딩의 계단을 뛰어 올라가거나, 집에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탄자와의 오야마를 달려 오르거나, 때로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야츠가타케를 등반하고 그날 안에 돌아오는 일도 했다.

6. 2. 주요 등반 목록

등정일산 이름높이비고
1980년몽블랑4810m가토 야스오 가이드
1982년 1월 1일킬리만자로5895m
1984년 1월 1일아콩카과6960m
1985년 7월 1일데날리6168m
1992년 8월 1일엘브루스5642m
1993년 12월 29일빈슨 산괴4892m
1994년 11월 12일칼스텐츠 피라미드4884m
1996년 5월 10일에베레스트8848m


참조

[1] 서적 Into Thin Air: A Personal Account of the Mt. Everest Disaster https://archive.org/[...] Villard
[2] 웹사이트 http://www.everesthi[...] 2024-08
[3] 웹사이트 Report from Base Camp https://www.pbs.org/[...] 1996-05-02
[4] 서적 Embracing Risk: The Changing Culture of Insurance and Responsibility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5] 뉴스 Two mountain climbers, an American and a Taiwanese, concluded.... https://www.upi.com/[...] United Press International, Inc. 1996-05-13
[6] 서적 Into Thin Air
[7] 서적 No Shortcuts to the Top: Climbing the World's 14 Highest Peaks https://archive.org/[...] Broadway Books
[8] 웹사이트 Remembering Those Who Died https://www.pbs.org/[...]
[9] 뉴스 Two mountain climbers UPI, Inc.
[10] 웹사이트 Into Thin Air: Death on Everest (TV Movie 1997) - Full Cast & Crew - IMDb https://www.imdb.com[...] 2015-05-21
[11] 뉴스 Universal in Talks for 'Everest' With Josh Brolin and Jake Gyllenhaal - Hollywood Reporter http://www.hollywood[...] 2013-07-17
[12] 간행물 日外アソシエーツ現代人物情報 1997-06
[13] 문서 1988年[[フェデラル・エクスプレス]](Fedex)によって買収、統合合併
[14] 웹사이트 1998年7月31日地平線報告会225 続素美代 http://www.chiheisen[...] 2013-10-08
[15] 뉴스 Keira Knightly tackles Everest with Jake Gyllenhaal http://www.cinemable[...] 201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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